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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8년 지중해의 두 강자 로마와 카르타고 간 전쟁이 제2차 포에니 전쟁이며 포에니 전쟁 기간 중 가장 위대한 승리로 평가받고 있는 칸나에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1. 제2차 포에니 전쟁 발생 원인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초반 우세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는 용맹한 로마 병사들을 이기지 못하고 패하게 되며 로마는 시칠리아 섬 서쪽 바다에서 펼쳐진 해전에서 크게 이겨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이렇게 기원전 241년 로마가 시칠리아 섬을 차지했습니다. 전쟁에서 지고 지중해의 최강자 자리를 빼앗긴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카르타고 식민지인 히스파니아 지역 총독이 되는데 하버지 하밀카르 바르카스 장군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로마를 공격해서 기원전 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지중해와 육로 모두 로마군이 장악하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고 로마군이 있는 곳을 피해서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게 되었는데 험한 알프스 산맥을 넘는 중에 절만 이 넘는 군사들을 잃었습니다.
이후 칸나에 전투에서는 뛰어난 용병술로 세계전사에 남을 대승을 거두되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칸나에 전투입니다.
2. 칸나에 전투 경과
혹독한 추위속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많은 부하를 잃은 한니발은 크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로마군을 대파하여 로마의 중부지방 방어선을 완전히 뚫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한니발은 플라미니우스 느라 시메노 호수 앞으로 로마군이 이동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호수 인근에 숨어 있었으며 한니발은 병사들에게 모닥불도 피우지 못하고 야영도 금지시켰고 새벽에 호수를 지나던 로마군을 급습하여 2만 5천의 로마군 중 1만 7 천명이 전사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죽어버린 것이며 전멸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후 한니발은 보급로 확보를 위해 더 남쪽으로 이동하기로 했고 이동로상에 위치한 캄파니아 주에서는 갖은 약탈을 통해 보급을 현지조달로 해결했습니다.
집정관들의 연이은 패전으로 로마 원로원은 집정관이 아닌 독재관을 선출하기로 했고 파비우스가 선출되었으며 그는 한니발은 원정을 왔고 보급도 충분치 않으니 적극적으로 전투를 하지 않았으며 소모전으로 끓고 가서 이기는 전술을 폈는데 훗날 '파비우스 전술'이라고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캄파니아 지방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약탈을 지속한 한니발에 대한 대응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파비우스는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집정관들이 다시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이후 로마는 지연전이 아리나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하게 됩니다.
로마는 가용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총 8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아플리아 지방의 칸나라는 지역에서 한니발 군과 대치하게 되며 당시 로마의 사령관 바로는 한니발 군이 평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병대가 있는 것을 고려하여 군병력 대부분을 강 우변에 진을 치게 했습니다.
그는 한니발의 기병대만 막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강력한 보병은 한니발의 방어선을 강하게 말고 들어가지만 한니발의 포위전략에 넘어간 것이었으며 한니발은 중앙을 의도적으로 밀리게 하고 좌익 보병과 우익 보병을 더욱 진군시켜 로마군을 완전히 포위하는 전략을 썼던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의 주력기병대는 한니발의 누미디아 기병대를 막았는데 이를 간파한 한니발은 누미디아 기병대에게는 큰 임무를 주지 않고 로마 기병대의 발을 묶게 하는 정도의 임무만 주었으며 스페인 갈리아 기병대가 포위된 로마 보병군 후위를 막도록 했습니다.
한니발 군에 포위된 로마군은 후방퇴로까지 차단된 상태에서 도망갈 곳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니발 군에 완전히 포위된 로마군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였으며 로마군 8만 명 중 4만 5천에서 6만여 명이 전사했고 2만여 명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렇게 한니발은 칸나에에서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하면서 그의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 군대의 대승 원인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제국과 카르타고군간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이 패한다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니발 장군의 전술적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니발은 전투장소를 조금씩 이동시키면서 본인들이 전투하기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하여 로마군의 대규모 병력을 충돌과 혼란에 빠뜨렸으며 중앙을 내주고 와우 측방을 강화하면서 완벽하게 적군을 포위하는 전술을 펼쳤으며 적의 후방도 차단하여 완벽한 섬멸작전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한니발은 전투에서 기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주력 기병은 적군 기병을 고착하고 용병 기병으로 포위한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전술을 성공적으로 평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로마군 지휘관의 역량 부족이었습니다. 바로와 파울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두 집정관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사령관직을 맡도록 했는데 바로 장군이 사령관직책을 수행할 때 한니발 장군의 계략에 넘어가 완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로마군은 칸나에 전투 이전에 중앙아시아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이고 있어 병력수가 한정되었고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무리하게 용병을 고용했지만 로마군의 전투방식과 다른 전투 기술을 사용하고 전투에 익숙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4. 칸나에 전투의 교훈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은 한니발의 전략에 빠져 패배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전략적인 융통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은 로마군의 예상을 빗나가는 놀라운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로마군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격을 하였기 때문에, 로마군은 전략적인 융통성을 갖추지 못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휘관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니발은 높은 지휘역량과 전략적 사고력으로 로마군을 상대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지휘역량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령하여 로마군을 속이고 공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군대 구성과 훈련의 중요성입니다. 로마군은 훌륭한 군대 구성과 훈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니발의 군대는 그들이 대응하는 방식을 사전에 간파하고 다른 방식으로 훈련시킴에 따라 로마군이 한니발의 군대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도록 했습니다.
네 번째는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활요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한니발은 로마군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들의 중대한 실수를 이용하여 칸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는 전투에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전투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의 비즈니스, 정치, 군사 전략 등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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